조수민의 개인전 ⟪Temporarily Occupied⟫는 2022년 [중간지점]에서 진행되는 10번째 전시이자 마지막 프로젝트이다. 전시 제목인 ‘일시적(으로) 점유(된)’은 조수민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된 화두이다. 점유는 '물건이나 영역, 지위 따위를 차지하여 자리’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조수민은 꾸준히 장소를 유지-보수하기 위한 행위 중 하나인 청소를 활용하여, 제도의 규정과 장소의 규칙 안에서 그것을 전복시키는 점유의 방식을 수행해왔다. 작가는 존재함으로 인해 어딘가의 자리를 차지하는 행위인 이 점유의 필연적인 일시성에 주목한다.
<일시적 점유 : 중간지점>은 이 전시장에서 앞서 진행된 9개 전시들 사이의 시간을 점유함으로써 시작된다. 올해 [중간지점]에서는 10개월 동안 9개의 전시가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설치되고 철수되었다. 이 기간 동안 조수민은 전시와 전시 사이, 짧은 공백의 기간을 비집고 들어가 전시장을 복구하는 행위를 ‘일시적 점유 퍼포먼스’로 명명한 뒤 반복적으로 수행해왔다. 청소, 유지-보수라는 행위를 통해 공간을 차지했던 다른 작가가 남긴 흔적을 지움으로써 조수민은 자신의 흔적과 질서로 이 장소를 재편성한다.
조수민은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여백을 이용한다. 첫째는 전시장에서 허용된 시간의 공백이다. 조수민은 다른 작가들에게 허락된 공간 점유 시간의 여집합, 즉 전시장에서 행위의 쉼표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차지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둘째는 전시장의 규율의 공백이다. 작가가 전시장에서 취한 행위는 어디까지나 공간 운영진이 계약서로 지시한 내용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수행되었다. 보수를 위한 제반 행위와 그 사이 작가가 자신만이 아는 방식으로 흔적을 남기는 과정은, 전시장 안에서 계약서라는 공적인 텍스트를 기반으로 수행되는 조수민의 사적인 행위이다.
전시장을 앞서 사용한 작가의 흔적을 지우면서 새로운 작가가 들어올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드는 퍼포먼스의 과정에서 조수민은 자신만이 아는 표식을 공간 곳곳에 남긴다. 다른 전시가 진행되는 시간 동안 전시장의 빈틈에서 이루어진 노동은 색색깔의 퍼티가 되어 벽에 심어지고, 작가가 덧바른 페인트에 덮여 존재를 허락 받는다. 이러한 조수민의 유지-보수 작업은 기존 제도와 소유권자가 설정한 공간 구성 방식을 강화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점차 반복, 누적됨에 따라 작가가 설정한 질서에 맞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10개월의 기간 동안 쌓여 온 작가의 유지-보수 활동은 작가의 이름이 공간과 함께 공시되는 시점, ⟪Temporarily Occupied⟫에서 비로소 관객들에게 드러난다. 작가가 이 공간을 언제, 어떻게, 어떤 대안적인 방식으로 차지했는지는, 사포질에 의해 한 꺼 풀 벗겨진 공간과 그 과정의 기록인 <일시적 점유 추적도> 및 웹 아카이브 <Temporarily Occupied : Archive> 를 통해 제시된다. 그러나 이 보수 작업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 또한, 머지않아 작가의 보수 작업에 의해 화이트 큐브의 형태로 회귀할 것이다. 이렇게 [중간지점]에서 남길 수 없는 것을 남기려는 제스처의 반복을 통해 조수민은 기존 제도의 빈 공간에 개입하여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대안적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특정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점유와 그 흔적의 관계를 실험한다. (글 이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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