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의 연쇄로 이루어진 균질한 바닥이 하나의 게임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반복되는 칸들을 이어 임의의 경로를 설정해보거나, 줄눈을 피해 칸과 칸 사이를 건너뛰어보자. 의도치 않게 줄눈을 밟는다고 해도 특별한 불이익이 따르지는 않을 테니, 태연히 다음 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만이다. 외부적으로 강요되지 않은 자의적인 규칙을 수행하며 몸은 의도와 우연한 실수 사이를 오가고, 예측과 대응을 전략 삼아 자신의 위치를 조정한다. 여기서 타일의 배열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결국 변하는 것은 주어진 타일을 통과하는 방식이다. 규제하는 동시에 생성하는 그리드(grid)로서 타일을 정의할 때,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구조가 표면에 떠오를 것이다.
타일을 그리드로 바라보게 되는 전환의 감각을 보다 넓은 일상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보자. 우리는 일상 역시 수많은 조건으로 구획된 구체적인 시공간임을 눈여겨보게 될 것이다. 공간을 나누는 경계, 시간을 반복적으로 구획하는 단위, 행위를 제한하는 규약 등 익숙한 나머지 좀처럼 의식되지 않는 조건을 전경으로 불러오기 위해 급진적인 전복까지 도모할 필요는 없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질서를 새삼스레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규칙 하나면 충분하다. 백승환과 조수민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규칙은 이러한 맥락에서 논의될 수 있다. 일상, 미술, 혹은 불가분하게 달라붙은 일상-미술을 규정하는 조건을 가시화하기 위한 규칙으로서 말이다.
조수민의 작업을 통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조건은 시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수민은 시간을 표준화하고 수치화하는 시스템에 주목한다. 예컨대, 〈On-Time Drawing / Waiting〉(2023-)은 디지털 시계의 뒷자리가 “00”을 표시하는 정각을 기준점 삼아 하루를 24번의 1시간으로 분절한다. 정각을 조금도 틀림없는 바로 그 시각이게끔 하고, 숫자와 알림으로써 표지하는 것은 추상화의 근대적 시간 체계의 산물이다. 자연에 없는 정각을 만들어 내는 시간 그리드로서 이 체계는 일상 전면에 침투하여 흐르는 시간을 구획한다. 하루를 59초와, 그 59초를 기다리는 59분 1초의 연속으로 경험하는 규칙을 세우며, 조수민은 인위적 시간이 지닌 조직과 구속의 힘을 가시화한다.
한편, 〈Office Depot (365)〉(2026)와 〈The Sky Shift〉(2024-)에서 시간 체계를 부단히 의식하려는 조수민의 시도는 한 시간, 하루의 반복으로 구축된 일 년이라는 상위 단위를 겨냥한다. 두 작업은 반복되는 하루, 그리고 매년 되돌아오는 365일을 (윤년이라면 366일) 비어 있는 칸으로 상정한 뒤, 이를 메우는 상반된 방식을 제안한다. 〈Office Depot (365)〉에서 그 칸을 차지하는 것은 조수민이 조교로 일하고 있는 학과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디지털 파일이다. 작성자를 추적하기 어려운 익명의 이미지이자, 제도로서 학과가 생산한 업무 기록은 생성 일자에 따라 선별되어 일 년의 달력을 구성한다. 그러나 20여 년을 가로지르는 데이터베이스로도 이 달력은 완전히 마감되지 않는다. 매년 법정 공휴일에는 학과가 운영되지 않고, 그렇다면 조수민이 수집할 파일 역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비어 있음은 학과 제도 바깥에서 발생한 예외가 아니라, 그 작동 방식에 내재한 휴지기에 연유한다. 〈Office Depot (365)>는 빈칸을 남겨둠으로써 제도가 멈추는 순간마저 그 제도를 가동하는 조건임을 노출한다.
이와 반대로 〈The Sky Shift〉는 보다 개인적인 리듬을 지닌다. 매일 여섯 번에 걸쳐 촬영한 하늘을 타임카드의 칸 위에 딱 들어맞게 붙여가며, 조수민은 추상적인 일자가 아닌 빛과 어둠, 날씨를 압축한 물질적 표면으로서 하루를 제시한다. 구체적인 일상, 실질적인 세계의 변화와 동기화되며 균질한 시간의 격자는 저마다 다른 밀도를 간직하게 된다. 이렇게 두 작업은 서로의 반대편에 자리한다. 하나는 디지털 시스템과 제도의 시간을 기록하고, 다른 하나는 몸으로 감각한 하루를 쌓아 올리며 주어진 365일의 격자 위를 다른 보폭으로 걷는다.
여기서, 출발선과 결승선이 같은 위치에 놓인 반복의 구조를 따라 달리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Track Drawing (29′25″)〉(2024)은 오로지 시간 그리드에 초점을 맞추는 듯하였던 조수민의 작업을 다시 읽게 만든다. 마주 보고 있는 두 대의 모니터는 각기 트랙의 맞은편을 비추며, 프레임 밖으로 달려 나갔다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제자리로 달려 들어오는 조수민을 보여준다. 체력이 소진되어감에 따라 그가 프레임에 등장하는 간격은 점차 넓어지며, 29분 25초가 지난 후 달리기는 완전히 멈춘다. 여기서 시간은 독립적인 조건이라기보다 트랙의 길이와 몸의 운동량에 의해 역산되는 값에 해당한다. 몸과 공간, 호흡과 피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를 몸의 이동으로 번역하며, 조수민은 여러 조건이 불가분하게 얽힌 복잡한 일상의 그리드를 파악한다.
조수민에게 일상-미술을 매개하는 삶의 조건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면, 백승환에게 사진은 작업의 매체이자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그 무엇보다 각별하다. 여러 갈래로 분기하는 사진의 조건을 확인하고, 그 조건들이 도출하는 사진의 가능성을 하나씩 검토하는 일은 백승환의 작업을 견인하는 동력이다. 그러나 투명한 지표와 반투명한 이미지 사이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기록과 예측 사이에서 증식하는 사진의 그리드를 온전히 밟아나가기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제는 알 듯하다고 생각했을 때 곧장 손아귀를 벗어나 버리는 사진의 유동성까지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생성되는 사진의 조건들을 기꺼이 검증하고자 하는 태도는 백승환의 힘이다. 백승환의 관심은 한 장의 사진만큼이나, 그 사진이 생산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탐구하는 지점에 있다. 카메라는 언제 세상을 기록하는가, 프레임은 무엇을 잘라내고 무엇을 걷어내는가, 사진은 말없이 거기-그때를 지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언제나 의미화의 문턱에 서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단일한 답변으로 정박시키기보다, 백승환은 매번 각기 다른 규칙을 지침 삼아 흔들리는 사진의 조건을 되묻는다.
Hovering (2023) 시리즈는 왜곡도, 사심의 개입도 없이 현실을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 사진의 본질이 될 수 있다면, 이를 위해서는 카메라 뒤에 자리한 촬영자의 존재가 희석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시작하는 듯하다. 지하철 출입문이 열리고 닫히는 때에 맞춰 그 문의 너머를 촬영하고, 김이 서린 거울 앞에서 20일간 매일 셔터를 누르는 규칙을 세움으로써 백승환은 뷰파인더에 들어오는 장면에 대한 선택을 최대한 유예한다. 지하철 출입문과 셔터의 움직임이 비유적으로 연동되고, 비슷한 구도로 촬영된 20일간의 거울 기록이 행렬을 맞출 때 사진으로부터 의미를 선취하려는 충동은 조금씩 휘발된다. 규칙과 그에 기반한 반복으로써 저자성을 카메라에 양도하는 상황을 가정하며, 백승환은 현실을 무사심하게 분절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사진의 작동 방식을 확인해 본다.
한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빵집의 한 단면을 발목 정도 높이에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로우 파일로 삼는 〈Making New Sequence〉(2021)는 기기의 위치를 잡는 초기 단계 이후로는 더 이상 촬영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Hovering 시리즈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진가의 의지와 사진을 분리해 낸다. 그러나 이 작업은 극적인 자동화와 객관화를 넘어, 사진의 또 다른 조건을 가늠한다는 점에서 조명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직사각형의 프레임으로써 움직이는 세계를 멈춰 세우지만, 역으로 세계는 무한히 확장되는 시공간을 암시하며 사진을 프레임 바깥으로 접속시킨다. 로우 파일로부터 발걸음만을 추출해 필름에 고정하고, 라이트박스 위에서 필름들을 겹쳐 보는 백승환의 작업은 사진이 함축하는 시간성을 재고하게 한다. 정지된 프레임은 서로를 통과하며 미세한 움직임을 품기 시작하고, 겹친 필름 위에서 발걸음들은 서로를 스쳐나간다. 1초에 24장의 사진을 재빠르게 줄 세우며 운동의 환영을 유도하는 영화가 되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필름 위로 또 다른 필름을 올려보는 백승환의 시도는 하나의 새로운 시퀀스를 이룬다. 단일한 프레임 속에 멈추어 있던 현실의 시간은 프레임과 프레임이 접촉할 때 아주 잠시, 그러나 분명히 흐른다.
사진의 생산 과정뿐 아니라 그것이 수용되는 방식은 백승환의 시선을 끈다. 〈삼십육까지 세어보기〉(2023)에서 사진과 (컨)텍스트의 관계를 엮어내며 그는 얇은 사진의 표면에 의미의 두께를 더하는 맥락들을 불러온다. 이때 백승환은 필름 한 롤에 들어 있는 컷의 수, 서른여섯이라는 물리적 조건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일상 가운데 하나부터 서른여섯까지의 숫자 하나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촬영되며, 그 장면에 대한 짧은 글이 사진의 현상에 앞서 작성된다. 이미 완결되어 버린 텍스트는 이후 정착될 사진을 정확히 예고하지도, 충실히 설명하지도 않는다.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 길을 걷던 중 문득 떠올린 생각, 캠퍼스를 배회하는 들개와 마주치고 싶었던 바람과 같은 작은 단상들은 프레임과 그저 느슨하게 포개질 뿐이다. 사진은 여전히 현실을 가리키는 지표지만, 언어와 기억을 호출하는 하나의 계기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사진의 생산과 시간성, 의미화의 조건 사이를 오가며, 백승환은 사전에 설정한 느슨한 구도를 따라 매체로서의 사진을 비스듬히 짚어 나간다.
백승환과 조수민이 제안하는 규칙은 완결을 보장하지 않는다. 완벽히 들어맞아야 한다는 강박 대신, 예외와 실패를 솔직히 고백하며 이들은 규칙의 틈 사이로 채워지지 않은 칸, 끝내 수행되지 못한 시간, 예기치 않은 우연을 흘려보낸다. 〈삼십육까지 세어보기〉는 필름 한 롤의 컷 수를 규칙으로 삼지만, 전시장에는 오로지 스물여섯 쌍의 텍스트와 사진이 놓여 있을 뿐이다. 끝내 적절한 장면을 만나지 못한 숫자의 자리는 빈칸 그대로 남아 그 조우의 실패를 고백한다. 정각을 놓쳤을 때, 조수민은 앞선 작업에서 놓쳐 버린 시간을 억지로 만회하지 않는다. 대신, 정확히 일 년 뒤, 같은 날짜와 같은 시간에 맞춰 공공장소에 놓인 시계를 찾아간다. 일 년 전 자신이 ‘정각을 놓친 시간’을 그곳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목격자-시계의 자리에 자신을 다시 위치시켜 보는 것이다. 되돌아온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공 시계의 위치를 확인하고, 정각 이전에 그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이동 경로를 계획하며, 조수민은 수행되지 못한 과거의 시간을 새로운 현재 속에서 다시 가동한다. 틀에 가둘 수 없는 과거를 지금으로 소환하는 것은 백승환의 〈잔여들〉(2026)도 마찬가지다. 10여 년 전 사회정치적 맥락을 되짚으며 촬영했던 다큐멘터리 사진은 더 이상 원래의 맥락만으로 환원되지 않고, 그 위로 더해진 시간의 두께에 눌리며 기억으로 전환된다. 규칙과 의도의 틀로는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것들은 과거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머무르지 않고, 예기치 않게 현재를 찾아오는 움직이는 잔여가 된다. 사진이 붙잡았던 그때는 지나갔지만, 그 흔적은 잔상처럼 눈앞에 떠오르며 과거를 이미 끝나버린 시간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이처럼 규칙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미완의 상태를 보존하는 장치일 때 의미를 지닌다. 놓친 정각, 비어 있는 자리는 실패를 드러내는 표지가 아니라 다음 시도를 위한 작은 참조점이며, 규칙이 포착하지 못한 잔여는 다음 시도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단서가 된다. 완결된 기록을 보관한다는 의미보다, 아직 효력을 다하지 않는 가능성들을 섣불리 폐기하지 않는 태도를 가리키기 위해 이 전시에 on file 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우리를 둘러싼 조건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고, 규칙은 그 변화를 끝내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조건을 의식하게 하는 규칙을 세우는 일만큼이나, 그 틈으로 빠져나간 것들을 다음 걸음의 참조점으로 남겨두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바닥 위를 걷겠지만, 그 참조점들이 익숙한 경로를 되짚는 발걸음에 작은 마찰을 가하리라 믿어본다. 그때에는 같은 곳을 걷더라도,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걸음으로 통과하지는 못할 것이다.
글. 박하은
*사진: 백승환
*사진: 백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