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멈추지 않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나¹
문혜진 (미술비평)

1. 무엇을 지향하는가
조수민의 작업은 외견상 여느 젊은 작가들의 작업과 사뭇 다르다. 비인간, 생태, 정체성, AI 등 유행하는 조류에 부합하지 않고, 청년 세대 특유의 에너지나 발칙함 같은 것과도 거리가 멀다. 차라리 고전적이기까지 한 개념적인 작업을 이 작가는 어떻게 하게 된 걸까. 약 2년간 아마도예술공간을 오가며 진행한 활동들을 100여 장의 타임카드에 기록한 <IDX: 2023-2025>(2025)를 보며 미술사를 공부한 이는 자신의 하루일과를 매일 기록한 온 카와라(On Kawara)의 <오늘 연작(Today Series)>(1966-2013)을 떠올릴 수 있다. 혹은 1층 전시장의 벽을 단계적으로 벗겨내 이전 전시의 흔적을 드러내는 <그레이룸>(2025)에서는 프랑코 토셀리 갤러리의 벽 전체를 갈아내 회반죽 표면을 노출한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의 작업((1973))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조수민이 계보적으로 제도비평이나 개념미술의 후예라는 점은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반복, 규칙, 지속, 집적, 체계 같은 조수민 작업의 방법론은 엄격하고 체계적인 기록방식을 도입한 개념미술의 유산이고, 원복이나 아카이빙의 형태로 전시장에 개입하는 방식 또한 갤러리 공간의 물리적·제도적 토대를 드러낸 제도비평의 충실한 계승일 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이미 50여 년 전의 미술사의 고전을 곱씹는 것이 이 영민한 작가의 목표일 리가 없지 않은가. 작게는 몇 개월, 크게는 몇 년의 시간을 요구하는 상당한 노동 강도의 고되고 지루한 작업을 그가 묵묵히 지속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찾는 것이 조수민의 작업을 이해하는 첩경일 것이다.

2. 공간에서 시간으로
《오프닝(Off-ning)》(아마도예술공간, 2025. 9.19.-10.19.)에 방문한 관객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작가가 전시장에 개입한 흔적이다. 1층의 경우 화이트에서 블랙으로 단계적으로 변이가 드러나도록 공간의 벽을 벗겨낸다. 아마도예술공간의 1층은 가정집을 개조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잔존하는 공간과 전형적 화이트큐브로서의 전시장이 공존하는 양가적 공간이다. 작가는 벽면의 색과 거칠음의 강도를 기준으로 가장 바깥의 쇼룸을 화이트(강도 1)로 설정하고 가장 안쪽의 복도를 블랙(강도 6)으로 지정해 6단계의 <그레이룸 인덱스>(2025)를 만들었다.² <그레이룸 인덱스>는 1층 공간에 개입하는 정도를 결정하는 지표가 된다. 조수민은 가장 바깥의 방부터 안쪽 방에 이르는 7개의 공간을 이 기준에 따라 매만졌다. 강도 1의 쇼룸은 더 하얗게 기존 전시의 흔적을 정리했으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벽을 긁고 갈아냈다. 이에 따라 공간은 흰 페인트 밑에 남은 다른 색 페인트를 슬쩍슬쩍 보여주다가 색면이 모두 갈려 나가면 그 이전에 칠해진 검정 페인트가 전면에 노출된다. 가장 안쪽의 방에 이르면 이 검정 페인트마저 벗겨져 초록색과 노란색의 벽지가 드러난다. 그간 아마도예술공간의 전시 궤적을 공간적 그라데이션으로 가시화한 것 같은 <그레이룸>(2025)은 화이트큐브와 대안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아마도예술공간의 중간적 정체성을 소거법을 통해 물리적으로 현시한다.
한편 2층의 <드로잉룸>(2025)은 벗겨냄이라는 부정(陰)의 방식을 통해 공간을 해석한 <그레이룸>과 달리 덧칠하기라는 부가(陽)의 방식으로 공간에 개입한 작업이다. 작가는 1년간 아마도예술공간 2층 공용공간의 벽을 원복하는 작업을 지속한다. 설치와 철수가 반복되는 가운데 다음 전시를 위한 유지보수 노동이 운영시간 이외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그레이룸>이 전시장의 물리적 측면을 드러낸 작업이라면, <드로잉룸>은 전시장의 제도적 측면에 대해 발언하는 작업이다. 전시라는 공적인 사건이 벌어지려면 물밑에서 이를 지탱하기 위한 행정적 유지보수 행위가 늘 필요하다. 모두가 공유하지만 숨겨져 있는 “이면의 시간”을³ 드러낸다는 점에서 <드로잉룸>은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패러다임을 문제시하는 제도비평 작업에 속할 것이다. 공간을 유지보수하는 노동이 작업이 되는 것은 중립적이라 여겨지는 갤러리 공간의 사회경제적 맥락을 표출하는 것이자, 예술적 실천과 일상적 노동 사이의 구분을 무화하여 일상과 예술을 분리하는 제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수민 작업은 통상의 제도비평과 달리 공간이나 제도의 맥락보다 시간과 행위의 비중이 더 크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드로잉룸>의 직접적 선례인 <일시적 점유: 중간지점>(2022)을 살펴보자. 2022년 작가는 을지로의 한 전시장에서 1년간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 기간 동안 조수민은 전시와 전시 사이에 공간을 복구하는 한편, 각 전시의 흔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한다. 그는 작품을 거는 과정에서 생기는 못 구멍을 활용해 이를 색 퍼티로 채우고 그 위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기록하는 동시에 복원한다. 이 일 년간의 유지보수 노동은 흰 페인트를 갈아내 그간 축적된 7가지 색깔의 퍼티를 드러내면서 마무리된다.⁴ 그해 해당 공간의 마지막 전시였던 《Temporarily Occupied》(2022)는 각 전시의 못 구멍의 위치를 기록한 <일시적 점유 추적도>(2022)와 퍼포먼스 기록 자료, 웹 아카이브와 함께 축적된 못 자국이 색색으로 노출된 벽면으로 완성되었다. 여기서 벽면은 화이트큐브의 이데올로기를 공격하거나 갤러리 공간의 물질성을 겨냥하기보다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 수반된 1년이라는 유지보수 노동의 시간을 드러내는 지표다. 같은 맥락에서 <드로잉룸> 역시 한편으로 일상과 예술의 구분에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제도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기보다 길고도 지루한 유지보수 노동의 행위와 시간이 훨씬 두드러진다. CCTV로 녹화된 30여 분 길이의 영상은 2025년 3월부터 9월까지 각기 다른 시간대에 벽면 복원 작업을 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폰을 끼고 퍼티를 바르고 벽면을 매만지는 작가의 노동은 끝없는 반복 그 자체다. 그 길고 반복적인 행위를 지켜보며 관객은 이면의 시간을 몸으로 체감한다. <그레이룸>에서도 방점은 공간보다 시간에 있다. 사포질은 표면적으로 대안공간의 거친 질감을 드러내지만, 공간 전체를 갈아내는 노동이 가리키는 것은 공간의 물질성보다 그간 축적된 전시의 시간이다. <일시적 점유: 중간지점>의 또 다른 연장이라 할 수 있는 <타일그래피>(2025) 또한 아마도예술공간 2층의 타일 방에 남은 구멍을 전시기록과 대조해 연도마다 다르게 표시함으로써 10여 년에 걸친 공간의 전시사를 소환한다. 이로써 《오프닝》의 작업은 제도를 이야기하면서도 갤러리의 공간에서 운영과 유지보수의 시간으로 이행한다.

3. 작업의 일상화와 일상의 작업화
《오프닝》 출품작의 근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전시의 축이 되는 두 작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IDX: 2023-2025>(2025)는 전시를 위해 2023년도부터 아마도예술공간을 오가며 진행한 모든 활동을 기록한 작업이다. 디렉터와 진행한 첫 회의부터 전시 개막식까지 약 100장의 타임카드는 메일 쓰기, 연락하기, 회의, 작업, 전시 보기라는 다섯 가지 항목으로 분류된다. 일종의 근무 일지인 <IDX: 2023-2025>는 작가가 아마도예술공간과 접촉하며 변화하는 조건에 반응한 작업의 과정을 가시화한다.⁵ <IDX: 2023-2025>가 전시에 관여한 시간을 대상으로 한다면, <‘아마도예술공간의 (비)가시적 틀/규범/규칙들’과 ‘아마도예술공간: 점유의 규칙’>(2025)은 전시장의 제도적 틀에 근간한다. 제도로서 공간이 부여하는 여러 규칙은 공간의 물리적 구조를 설명하는 ‘물리적 틀’, 전시의 장소와 사용 방식을 제한하는 ‘전시장의 틀’, 공간의 지향점과 방향성을 알리는 ‘개념적 틀’로 구분되어 제시된다. 작가는 검은 글씨로 인쇄된 공간의 규칙 밑에 빨강에서 보라로 이어지는 색색의 글자로 자신이 해석한 점유의 규칙을 기술한다. 일례로, 1층 공간을 건조하게 기술하는 공적 문서의 하단에 작가는 1층 공간의 창문이 과거의 건축 구조가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요소이며 이곳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이 공간의 주요한 물리적 특성이라는, 설치가 필수인 작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해석을 덧붙인다. 이러한 해석은 작가가 주어진 규범에 반응해 스스로 점유의 규칙을 만들어낸 흔적으로, 전체 작업을 풀어가는 개념적 지침이 된다.
“주어지는 특정한 조건에 반응해 자신만의 규칙을 수립하고 이에 따른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⁶ 조수민의 방법론은 <IDX: 2023-2025>와 <‘아마도예술공간의 (비)가시적 틀/규범/규칙들’과 ‘아마도예술공간: 점유의 규칙’> 이전에도 이미 구축되어 있었다. 학부 졸업 작품인 <Home(1)>(2020)은 코로나 방역 상황에서 강박적으로 강조되던 청소를 이용한 작업으로, 코로나 거리두기 규칙인 2x2㎡의 공간을 한 학기 동안 반복적으로 청소하는 과정을 영상 기록과 현장 사진, 청소일지, 청소용품으로 제시했다. 이후 작가는 외부 공간으로 눈을 돌려 공사 중인 실기실이나 미대 옥상을 청소하기 시작한다(<Home(2)>(2020)). 여기서 청소는 무단 점유가 허용되지 않는 공공 공간의 규칙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기존의 흔적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가의 흔적을 남겨 일시적으로 해당 공간을 점유한다. 기존 규칙의 범주 안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방식은 졸업 후 진행된 <Home(3)>(2021)에서 좀 더 형태를 갖춘다. 교내의 내부 방침이던 규칙은 이제 건물주와의 정식 계약서로 명확히 성문화된다. 공용공간 사용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점유의 시간을 가시화하기 위해 작가는 “흔적을 남기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을 택한다.⁷ 얼룩덜룩한 벽돌 벽에 붉은색 콩테를 덧칠해 벽의 톤을 통일하거나 옥상의 일부 구역을 청소하는 행위는 규율 안에서 존재의 자리를 한정적으로 남기는 방식이다.
일상 속 조건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규칙적으로 시행하는 작가의 방법론은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의 결과다. 코로나 시절 이후 석사 과정을 보내며 작가는 그저 덤처럼 주어진 2년이라는 제도적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작업을 지속하려면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일상생활을 하듯이 꾸준히 할 수 있는 쉬운 작업이었다. 매번 작업실을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작업, 매번 창작의 고통에 빠지지 않아도 가능한 작업. 그것은 여기서 나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해당 조건과 상황에 맞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⁸ 이것이 “흔적을 남기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조수민의 방법론이 형성된 과정이다.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기록하거나 정리하는 것은 작가가 선호하는 익숙한 방식이다. 허용된 범위 안에서 자신만의 규칙으로 정례화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작업의 일상화를 뜻한다. 연작이 할당된 공간의 청소가 된 사정, <일시적 점유: 중간지점>이 공간을 운영하기 위한 원복 노동이 된 이유, 《오프닝》 출품작들이 아마도예술공간이라는 공간특정성에 반응하는 까닭은 그것이 당시 작가에게 주어진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조건과 이를 소화하기 위해 고안한 작가의 규칙, 이를 실행하는 반복적 실천이다. 그렇기에 <드로잉룸>과 <그레이룸>은 아마도예술공간의 관점에서 보면 제도적이고 장소특정적인 작업이지만, 조수민 작업 전반의 맥락에서는 규칙과 행위, 반복, 시간이라는 특징을 공유하는 연속된 흐름 속에 자리한다. 작가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를 도표로 정리한 <2023/05/01-2025/12/31>(2025)은 조수민의 모든 작업이 이미 일상의 일부임을 증명한다. 그중 전시장에 선보인 (2024~)는 조수민의 작업이 작업의 일상화를 넘어 일상의 작업화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2월부터 2025년 8월까지 매일매일 오전, 오후, 저녁마다 각 두 번씩 하루에 총 6번 하늘을 찍고 촬영 시각을 기록한 이 7개월간의 노고를 보며, 관객은 하루도 빠짐없이 임무를 수행하는 작가의 성실함과 지난한 시간의 무게에 할 말을 잃게 된다. 간혹 보이는 빈칸(미처 찍지 못한 날)이 인간적 흔적으로 보여 반가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 엄청난 근면함은 균질하고도 공허한 순수 추상으로서의 시간을 제시하는⁹ 온 카와라의 시간과는 다르다. 조수민의 시간은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부과한 규칙의 이행으로, 추상적이고 계량적인 외피와 달리 한 개인이 겪은 구체적 경험으로서의 시간이다. 그 속에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누군가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긴장이 녹아들어 있다.

4. 무의미함을 남김없이 실천하기
조수민의 진행형 작업은 외에도 몇 개 더 있다. 마무리된 것으로는 일 년간 해와 달이 같은 모양이 되는 보름날, 동해에서 월출을 서해에서 일몰을 기록한 <O.O(Full Moon Piece)>(2024~2025)가 있고, 지금도 진행되는 작업으로는 전시장 원복 노동 이후 남은 힘을 의자를 오르내리는 행위로 측정하는 <Step Piece(after Work)>(2023~), 24시간의 매 정각마다 약 1분 동안 정각의 숫자를 그리는 <On-Time Drawing/Waiting>(2023~), <On-Time Drawing/Waiting>에서 놓친 정각의 시간을 이듬해 같은 날 공공장소의 시계를 찾아가 사진으로 기록하는 (2024~)이 있다.¹⁰ 24시간 동안 작업이 가능한 날마다 계속 진행하는 <On-Time Drawing/Waiting>에서 미처 다 그리지 못한 미완성 숫자들의 집적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정각이 유지되는 약 59초 동안 최대한 빠르게 도면을 완벽히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러나 언제나 실패하는) 이 작업은 작가의 시간 전체를 미술의 시간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하루를 24개로 쪼개고 다시 그 한 시간을 정각을 드로잉하는 59초와 다음 정각을 기다리는 59분 1초로 조각내어 작가의 시간을 ‘드로잉하기’와 ‘기다리기’의 행위로 완전히 채우는 24시간의 작업.¹¹ 아마도 이 작업을 하는 날 작가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잠을 자는 것도, 먹는 것도, 기타 용무를 처리하는 것도 기다림의 시간인 59분 1초간만 허락된다. 이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놓친 시간을 작가는 기어이 찾아내 1년 후 채워 넣는다(<Missed Time>).
우연과 실수마저 또 다른 규칙으로 포용해 행위의 범위와 미술의 시간을 끝없이 확장하는 이 여정이 언제까지 또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온 카와라는 자신의 반평생을 정확하고 순수한 시간의 분절로 환원시켰다. 하지만 조수민에게 시간은 그 자체의 순수 집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일이고, 작업이고, 노동인지가 모호한 일상과 미술의 경계에서 … 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기준점이다.¹² “나는 현재의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24시간 작업이 가능한 날을 계속 찾고 있으며, 동시에 과거 24시간 작업이 가능했던 날에 놓쳤던 시간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미래의 그날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¹³ 여기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끝없는 지속이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체력이 한계에 이르거나, 일이 너무 많아지는 등 상황이 바뀌면 이들은 언제든 끝날 수 있다. 끝을 알지 못하지만 현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는 것, 그것이 조수민이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찾은 방법이다.
자칫 허망함으로 빠지기 쉬운 반복 속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의 단단한 의지를 놀라운 눈으로 지켜보며 예전에 읽었던 한 책을 떠올렸다.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의 여행기 『얼음 속을 걷다』. 헤어초크는 친구인 영화 평론가 로테 아이스너가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고 비와 강풍, 폭설, 우박이 뒤섞인 악천후를 뚫고 뮌헨에서 파리까지 22일을 걸어 아이스너에게 도착한다. 무모한 여정이 친구를 살리리라는 보장도 없고 가는 도중에 친구가 죽을 수도 있는 막막한 상황에서, 헤어초크의 선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자신의 두 다리로 걷고 또 걷는 수행)을 경주하는 것이었다. 이런 무모한 행위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당연히 든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그 무의미함을 남김없이 실천하는 쪽을 택한다.¹⁴ 조수민이 자신의 일상을 작업으로 치환하며 미술과 일상의 경계를 계속해서 교란하는 행위 역시 헤어초크의 걷기와 다르지 않다. 이런 식의 작업이 얼마나 지속될지 어떻게 전개될지 스스로도 모르지만, 일도 하고 작업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상에서 작업을 꾸준히 수행하는 것이 조수민이 무의미함을 남김없이 실천하는 행위가 아닐까. 영화 <희생>의 주인공은 누군가 매일 같은 시각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세상이 바뀔 거라고 말한다. 조수민의 무의미함이 쌓이고 쌓여 미술과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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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조수민과의 인터뷰, 2026년 2월 18일.
² <그레이룸> 작가 노트. https://sumincho.work/dk
³ 조수민과의 인터뷰, 2026년 2월 18일.
⁴ 작가의 개인전 이전에 열린 전시의 횟수는 9개였으나, VR 전시와 텍스트 설치처럼 벽에 거는 작업이 없던 경우가 있어서 퍼티의 색은 7개가 되었다.
⁵ 《오프닝》 팸플릿의 작품 설명, 2025.
⁶ 곽노원, 《오프닝》 서문, 2025.
⁷ <Home(3)> 작가노트, 2021. https://sumincho.work/home3
⁸ 조수민과의 인터뷰, 2026년 2월 18일.
⁹ 우정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온 카와라의 <일일회화>와 전쟁의 기억」,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27), 2007, 52-73쪽.
¹⁰ 《오프닝》 팸플릿의 작품 설명, 2025.
¹¹ <On-Time Drawing/Waiting> 작가 노트. https://sumincho.work/59-24
¹² 위의 작가 노트.
¹⁴ 베르너 헤어초크(안상원 옮김), 『얼음 속을 걷다』 (서울: 밤의 책, 2021),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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